천진난만한 태도와 합리적인 생각들로
오늘, 날씨스러운 제품을 만듭니다.


We have a naive attitude and logical creative.


날씨에 순응하고 만끽하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천진난만한 태도로 옷을 상상하고 합리적인 틀 안에서 다채로운 변주를 시도합니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할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실용적이고 단단한 제품을 고집합니다.


The sense of life weather's give is the only compass of this voyage.


For a harmonious life that adapts to the weather and enjoys nature,

We insist on a reasonable product that is practical but not lacking.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오브제 그리고 그날, 그곳의 날씨




사람이 정해 놓은 시간의 셈법은 참 묘한 힘이 있습니다.

바로 어제였는데 작년이 되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사람이 제일 처음 한다는 짓(?)이 헌 사람을 꾸짖는 넋두리입니다.


지난봄과 여름.

봉제의 세상은 오래된 페이스트리처럼 서걱하고 각박했습니다.

어딜 가나 눈치가 보였고 만나는 사람마다 울상입니다.

눅진한 분위기가 내 마음에 스미지 않게 제습제를 뿌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퍼석해지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영양제가 잔뜩 꽂혀 있지만 점점 누렇게 말라가는 식물 같습니다.

건조해진 손은 일을 찰지게 붙이지 못합니다.

놓친 일을 잡자니 이미 쥐고 있던 일마저 바람에 흩날립니다.

세게 쥐어보자 다짐하면 게으른 파도가 이때다 하고 밀려와 초기화 & 반복.


지난 늦가을부터.

에라이. 까짓 거 바득바득 애쓰며 맞추지 말자.

손을 뻗어 닿는 물건만으로 세상을 보고 최소한의 소통만 했습니다.

미동 없이 눈동자만 굴리며 느린 호흡과 희미한 맥박을 유지.

무언(無言)의 차를 몰고 은둔의 터널로 들어간 주인장 탓에 날씨는 해질녁 놀이터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되었습니다.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미끄럼틀만 반복적으로 타고 내립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르지 않으며

여전히 터널 끝을 알리는 여린 빛은 기척이 없습니다.

다만 새사람은 터널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며 마음을 다집니다.


본래 터널은 목적지를 정확하고 빠르게 가기 위해 만들어진 통로입니다.

막혀 있지 않고 뚫려 있어야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턴을 할 수 없습니다. 방향은 무조건 출구입니다.


그러니.

나와 당신이 길이를 알 수 없는 슬럼프의 터널 속을 달리고 있다는 것.

분명 목적지와 방향이 옳기 때문일 겁니다.

걷든 뛰든 멈추지만 않으면 됩니다.


오늘의 날씨가 차곡차곡 쌓여, 일 년 내내 별일 없이 살아지길 바라며.

올 한 해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샬롬.






편집숍.
육각형 인재 같은 브랜드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집결해 있는 곳.
틈날 때마다 기웃기웃 엿보던 브랜드들이 각 잡고 도열해 있는 곳.
도무지 1번부터 9번까지 거를 타선이 없는 프로들이 즐비한 곳.

그런 편집숍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다소 뜻밖이었지만 우리 제품을 직접 구매해 입고 미팅에 참석한 그들의 모습에서 호기심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의 시작점, 방향성, 시즌 구상 등을 논하면서 상대를 살피고 배려하는 뭉뚝한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마치 감추고 싶은 뱃살이 드러날까 숨을 나눠 쉬며 조심스레 날씨를 전했습니다.
담소에 더 가까웠던 우리의 미팅은 실체가 있는 비즈니스로 연결해 보자는 고민과 함께 다음을 기약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꽤나 오래전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구입한 어색한 정장을 입고 치른 첫 면접이 생각났습니다.
자신 있게 면접장에 들어섰지만 모든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다른 후보자들의 성숙하고 정돈된 태도와 답변에 속도 없이 감탄만 했습니다.

자신을 소개하고 검증하는 자리는 참 무겁고 무섭습니다.
하물며 브랜드는 오죽할까요.
오래전 그 첫 면접만큼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양화대교의 흐름은 저의 마음만큼 답답합니다.
숙제가 많습니다.

샬롬.


처음 만난 작은 브랜드에 지갑을 열어 적잖은 값을 치릅니다.

그리고 ‘기대치에 대한 만족 정도’를 리뷰로 표현합니다.

DM으로는 조금 더 친밀한 응원을 받습니다.


이럴 때면 우리 제품에 대한 의심의 안개가 한 꺼풀 옅어집니다.

이 틈을 노려 아쉬웠던 패턴을 티 안 나게 살짝 고쳐보고, 마진을 연료 삼아 아쉬웠던 바느질의 땀수도 높여 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어느새 의심의 안개가 소독차 연기 내뿜 듯 뿌아앙 밀려옵니다. 녹사평역 육교에서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짙어집니다.


짙은 안개는 좁디좁은 길마저 흐릿하게 합니다.

갈 길은 먼데 발끝으로 디딜 땅을 열 대번 디딘 다음 겨우 한 발짝 내딛습니다.

’너무 무서운데 조금만 되돌아가 볼까?’

뒤를 돌아봤자 걸어온 길은 빼박이라는 모래바람에 휩쓸려 흔적조차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은 브랜드, 단단해 보이고 싶지만 마냥 허약합니다.

성장이 더디고 벌써 성장이 끝나버린 나이가 되었나 싶어 초조합니다.

나약함이 탈로 날까 여기저기 눈치 보기 바쁩니다.


주문이 들어옵니다.

택배 상자에 송장을 붙이며 의심을 물리치는 주문을 외웁니다.

’명심해. 넌 정말 멋지고 좋은 옷이야.’


하지만 여전히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을 테고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더디겠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나누면 뿌연 마음에 미약한 빛이 비치고 연약한 바람이 붑니다. 


누구나 자신을 의심하며 삽니다.

어쩌면 다행입니다.

근거 없는 자기 확신만큼 무서운 것은 또 없으니까요.


샬롬.


하늘은 맑았고 눈앞은 흐릿했으며 햇빛 속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오늘 우리의 결정은 건강하고 정당하고 마땅하다.
이제 우리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짧은 봄을 만끽하자.


“조카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큰 고모부가 보내온 문자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통화 버튼을 눌러야 했는데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그냥 내려놨다.

문장의 뜻이 너무 까마득했고 내 몸은 멀리 있었다.


한참을 해변에 앉아 오고 가는 파도를 바라봤다.

할머니와 나눈 수많은 기억이 파도에 실려 온다.

어떤 기억에서 가슴이 세게 눌리며 쪼였다.

꽉 깨문 이 사이로 막힌 울음이 세어 나왔다.


한번 길을 낸 울음은 원활하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팡팡 털며 사탕 뺏긴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내 몸이 내는 울음소리와 뜻 모를 언어들의 수군거림에 귓속이 먹먹했다.

눈물에 번져 보이는 옥색 바다와 하얀 파라솔이 찬란하고 예뻤다.

언제 또 여길 와보나 세속적인 생각이 들어 뻔한 풍경 사진을 몇장 찍었다.


9월 더운 대낮, 지중해 해변에서 듣는 할머니의 부고 소식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영화의 한장면 같다.



나는 할머니에게 걷고 서는 법을 배웠고 말투를 배웠다.

밥을 먹고 치우는 습관을 배웠다.

할머니의 말투와 식성과 몸짓이 내 몸에 스며 들어 있다.


친절하라. 성실하라. 웃어라. 돈 벌고 모아라. 도덕을 지키라 가르치셨다.

안타깝지만 겨우 흉내만 내는 사람이 됐다.

당신을 반에 반도 닮지 못한 손주는 면목이 없다.



오래된 금반지 하나와 가느다란 목걸이 하나. 쇼트커트, 주름치마, 삼베 모시.

치장 없이 수수하지만 곧은 자세와 낮은 목소리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우아한 여성이셨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을 때는 청년들의 수고를 걱정하는 어른이었고, 폐지를 줍는 또래의 어른들을 사귀며 일손을 보태고 밥을 나누는 좋은 이웃이었다.


나이가 앞설수록 생각도 앞서야 한다며 뉴스를 꼬박 챙기셨고 저녁 밥상을 차려 주시며 손주에게 전한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셔서 늘상 라디오를 켜고 생활하셨고, 주말에는 다 큰 손주의 속옷을 삶아 빨며 개운해 하셨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의 고집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어 항상 한 끗 차이로 내가 졌다.


몸이 아파 일찍 떠난 야속한 남편과 자신의 것을 진즉에 다 퍼주어 물질이 넉넉한 삶은 아니셨다.

가진 것 하나 없음에도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미안해 오래 일을 하셨다.

그래서 주름이 깊고 손 마디가 거칠었다. 눈이 침침하여 오래 고생하셨다.



늘 사랑만 받아온 손주는 당신의 임종도 입관도 지키지 못하고 장례 마지막 날에서야 상복을 입고 곡을 했다.

식구들이 장례 일정을 4일장으로 변경하고 나를 기다렸다.

모두가 하루를 더 슬퍼해주며 자리를 비운 장손의 사정을 조문객들에게 변호했다.

우리가 아닌 할머니가 손주를 기다린 거라며,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오히려 민망하고 염치없는 나를 배려한다.

고맙다.



땅콩 크림 같은 땅속으로 할매의 작고 곧은 몸이 뉘인다.

일꾼들의 손이 야무지지 못해 마음을 졸였다.

나는 세 번 흙을 뿌린다.
퍼석한 흙이 관에 닿는 소리가 새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렸다.

땅을 덮는 소리에서 땅을 박차고 나는 소리가 났다.


포크레인의 육중한 삽이 흙을 꾹꾹 누를 땐 내 가슴이 눌린 듯 숨이 막혔다.

너무 빈틈이 없으면 할머니의 숨도 갑갑할까 육신의 틀에 갇힌 손주는 두려움이 사무친 울음을 꺽꺽였다.


할머니가 시집와 살던 마을 뒤편 선산은 볕이 좋고 울창하다.

다만 도로와 가까워 산을 끼고도는 차들의 부대낌이 시끄러워 걱정이다.


때를 모두 입은 봉분을 확인하지 못하고 서울로 향하는 식구들의 마음은 석연치 않다.

부디 봉분에 자리 잡은 때가 우리 할매처럼 아담하고 소박하게 잘 자라 주어 후대의 수고를 덜어 주길 바란다.



그 남자는 언제부터 실격처리 되었을까.
스스로 실격이라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풍족한 삶은 축복이지만 그 환경을 누릴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가진다.
그 숙제를 풀지 못한 남자는 이름이 흐릿해 지며 여러개로 갈린다.

축축하고 고립된 그곳, Hinterland

폐가에서 만난 솜이불 처럼 스산한 안개가 퍼진다.
안개에 휩싸여 짓눌린 대지는 속을 알 수 없다.
그 대지를 터전 삼아 사는 인간들의 삶은 오한 걸린 듯 쑤시고 열이 난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광활한 웨일즈 땅의 매력이 힌터랜드에 가득 펼쳐진다.
해풍으로 묵직해진 공기의 밀도와 신문지 태운 재를 발라 놓은 하늘이 동공의 지름을 키우며 몰입하게 한다.


북산 베스트 파이브 중 가장 세련된(패션)된 모습으로 그려졌던 그가(송태섭/미야기 료타) 간토 지역이 아닌 오키나와 태생이라는 것이 꽤나 신선하다.

아픈 과거를 가졌음에도 어떤 캐릭터 보다 당당하고 구김 없어 보이는 이유.
세상을 떠난 형이 남긴 마지막 말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코트 위에 섰기 때문이겠지 🏀

어떤 준비도 없이 눈이 번쩍 떠진다. 목 뒤 근육이 확 당긴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미 원망의 욕지기를 장전하고 휴대폰을 들어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이다.

안도감과 피곤이 동시에 밀려온다. 밤새 시달리다 제모습을 찾은 팡팡 한 베개에 다시 한번 헝클어진 머리를 올린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그런 아침이다.

곤두선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잠들지 않기 위해 생각들을 끄집어 낸다.
날씨는 어떨까? 얼마나 추울까? 지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뭐 입지?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 틈에 잠이란 녀석이 마취총을 들고 잠복해 있다.

제시간에 울린 알람은 결국 듣지 못한다. 한참 지각이다.

모두가 예찬하는 '한 여름 밤 시원한 맥주' 맛을 나는 잘 모른다.
술이 만들어주는 무드를 좋아할 뿐 맛을 느낀다 라는 의미로써 술은 그저 쓰디쓴 액체일 뿐이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인생 첫 해외 여행지 방콕에서 만난 싱하의 맛은 결코 잊지 못한다. 그래서 혼술을 흉내 낼 때면 싱하를 찾는다.
싱하를 한 잔 비우면 방콕의 찐득한 밤 공기가 한가득 치고 들어 온다.

맥주의 종류도 잘 모르고 맥아의 풍미와 탄산 함량과의 함수 관계는 설명할 수 없지만 어째든 난 싱하가 아직까지 인생 최고의 맥주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싱하를 구할 수가 없다 .수입사가 없단다.
애통하다.

➖

겨울 해가 63빌딩 뒤로 숨은 한강철교를 오랜만에 건넌다.

지하철의 진동 탓인지 잿빛 된 노을의 끄트머리가 오한 들린 듯 벌벌 떨린다.

나에겐 늘 무섭고 무정한 한강은 살얼음 때문인지 더욱더 차갑고 냉정한 얼굴이다.

물을 무서워한다. 수영을 못한다.

몸이 반 이상 물에 담기면 숨이 가빠 온다.

한강은 유독 무섭다.

내가 만난 그 어떤 바다와 강보다 속이 시커멓다.

강변에서 물멍을 하자면 우뚝 선 다리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는 찰나를 목격할 것 같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다리를 건널 때면 금방이라도 중력에 이끌려 수력 속에 던져지는 망상에 빠진다.

이런 무기력한 두려움은 서울을 향한 애정마저 식게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바다와 강만큼 좋은 것도 없다.

정확히는 물가에 물든 고유한 무드가 좋다.


비린내 나는 횟감에 소주 한 잔을 적실 수 있는 강원도의 바다.

따숩게 달궈진 둥근 차돌에 엉덩이를 데우던 니스의 해변.

갈매기조차 그레이 슈트를 입고 날던 도버 해협.

한 쌍의 거대한 고니가 왈츠를 추던 블타바강.

이탈리아의 끝자락에 도착해 만난 광활한 지중해.

등등등.



어릴적 단행본을 소장하고 있던 친구가 너무나 부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가 가진 것은 단순히 그림책이 아닌 권력이었다. 콘텐츠를 가진자가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 나는 늦게나마 가져보지 못한 그 권력을 손해 쥐어 본다. 때를 놓친 권력은 소망이 되고 그 소망들을 하나 둘 성취하며 우리는 어른이 된다.


시각적 여백은 반드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사고의 빈그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라보는 이에게 채우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는 디자인.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어도 될 성 싶은 균형 잡힌 여백의 미.

그런데 알면서도 잘 안된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차고 넘치는 디테일에 허우적거린다.
디자인, 못해서 참 어렵다.

흠없이 잘 깨진 호두를 보자니 비슷하지만 결코 똑같은 것이 없는 사람의 지문이 떠오른다. 딱딱한 머리뼈 속에 들어 앉은 나의 뇌 같기도 하다.

고소하고 쌉싸름한 호두를 씹으며 동경하던 인물들을 떠올린다. 스타일 뮤즈, 디자인 뮤즈, 지식의 뮤즈, 부와 권력의 뮤즈 등등
그들의 센스가 내 엄지에도 아로 새겨지길, 그들의 뇌주름이 나의 뇌에도 새겨지는 허황된 상상을 해본다.

운동은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 야구를 자주 본다. 시즌이면 월요일 또는 우천 취소를 제외하고 매일 경기를 한다. 그 지속성은 자연스레 일상의 루틴을 만들게 한다. 경기 중계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다양한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챙겨볼게 많다.

무언가를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본다는 것은 애정이다. 오래 볼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어느 시인이 썼다. 애정 한다는 것은 감정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팀의 결과에 따라 감정기복이 생긴다.

나는 두산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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