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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큰 고모부가 보내온 문자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통화 버튼을 눌러야 했는데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그냥 내려놨다.
문장의 뜻이 너무 까마득했고 내 몸은 멀리 있었다.
한참을 해변에 앉아 오고 가는 파도를 바라봤다.
할머니와 나눈 수많은 기억이 파도에 실려 온다.
어떤 기억에서 가슴이 세게 눌리며 쪼였다.
꽉 깨문 이 사이로 막힌 울음이 세어 나왔다.
한번 길을 낸 울음은 원활하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팡팡 털며 사탕 뺏긴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내 몸이 내는 울음소리와 뜻 모를 언어들의 수군거림에 귓속이 먹먹했다.
눈물에 번져 보이는 옥색 바다와 하얀 파라솔이 찬란하고 예뻤다.
언제 또 여길 와보나 세속적인 생각이 들어 뻔한 풍경 사진을 몇장 찍었다.
9월 더운 대낮, 지중해 해변에서 듣는 할머니의 부고 소식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영화의 한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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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에게 걷고 서는 법을 배웠고 말투를 배웠다.
밥을 먹고 치우는 습관을 배웠다.
할머니의 말투와 식성과 몸짓이 내 몸에 스며 들어 있다.
친절하라. 성실하라. 웃어라. 돈 벌고 모아라. 도덕을 지키라 가르치셨다.
안타깝지만 겨우 흉내만 내는 사람이 됐다.
당신을 반에 반도 닮지 못한 손주는 면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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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금반지 하나와 가느다란 목걸이 하나. 숏커트, 주름치마, 삼베 모시.
치장 없이 수수하지만 곧은 자세와 낮은 목소리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우아한 여성이셨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을 때는 청년들의 수고를 걱정하는 어른이었고, 폐지를 줍는 또래의 어른들을 사귀며 일손을 보태고 밥을 나누는 좋은 이웃이었다.
나이가 앞설수록 생각도 앞서야 한다며 뉴스를 꼬박 챙기셨고 저녁 밥상을 차려 주시며 손주에게 전한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셔서 늘상 라디오를 켜고 생활하셨고, 주말에는 다 큰 손주의 속옷을 삶아 빨며 개운해 하셨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의 고집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어 항상 한 끗 차이로 내가 졌다.
몸이 아파 일찍 떠난 야속한 남편과 자신의 것을 진즉에 다 퍼주어 물질이 넉넉한 삶은 아니셨다.
가진 것 하나 없음에도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미안해 오래 일을 하셨다.
그래서 주름이 깊고 손 마디가 거칠었다. 눈이 침침하여 오래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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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랑만 받아온 손주는 당신의 임종도 입관도 지키지 못하고 장례 마지막 날에서야 상복을 입고 곡을 했다.
식구들이 장례 일정을 4일장으로 변경하고 나를 기다렸다.
모두가 하루를 더 슬퍼해주며 자리를 비운 장손의 사정을 조문객들에게 변호했다.
우리가 아닌 할머니가 손주를 기다린 거라며,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오히려 민망하고 염치없는 나를 배려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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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크림 같은 땅속으로 할매의 작고 곧은 몸이 뉘인다.
일꾼들의 손이 야무지지 못해 마음을 졸였다.
나는 세 번 흙을 뿌린다.
퍼석한 흙이 관에 닿는 소리가 새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렸다.
땅을 덮는 소리에서 땅을 박차고 나는 소리가 났다.
포크레인의 육중한 삽이 흙을 꾹꾹 누를 땐 내 가슴이 눌린 듯 숨이 막혔다.
너무 빈틈이 없으면 할머니의 숨도 갑갑할까 육신의 틀에 갇힌 손주는 두려움이 사무친 울음을 꺽꺽였다.
할머니가 시집와 살던 마을 뒤편 선산은 볕이 좋고 울창하다.
다만 도로와 가까워 산을 끼고도는 차들의 부대낌이 시끄러워 걱정이고, 때를 입힌 봉분을 확인하지 못해 식구들 모두 석연치 않다.
때가 부디 우리 할머니처럼 아담하고 소박하게 잘 자라 주어 후대의 수고를 덜어 주었으면 한다.